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 (문단 편집) === 여론재판 === 미국 입장에서 이 사건은 해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악의 참사였다. 특히 사건 전날에는 [[진주만 공습]]의 완벽한 복수전인 [[구레 군항 공습]]을 성공시켰기에 충격은 더욱 심했다. 이 소식은 미국 곳곳으로 빠르게 퍼졌고 미국 내에서는 해군의 실책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결국 해군은 책임 떠넘기기로 맥베이 대령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미 해군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군함 약 700여 척을 잃었지만 자기 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재판에 회부된 함장은 맥베이 대령이 유일했다.[* [[진주만 공습]] 당시 지휘관이었던 허즈밴드 킴멜도 보직해임되고 불명예 전역하는 선에서 끝났지 군사 법정까지 가지는 않았다.] 맥베이 대령의 죄목도 '적의 공격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함을 침몰시킨 것'이라는 가관스러운 것이었다. 자세히는 '어뢰 회피를 위한 지그재그 기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원칙상으로는 맞는 말 같지만 지그재그 기동을 하면 속도와 항속거리가 많이 줄어드는 데다가 항해시간도 꽤나 길어지기 때문에 적 잠수함이 매복했을 확률이 높은 수역에서나 주로 한다. 게다가 [[배수량]]만 1만 톤에 가까운 인디애나폴리스라면, 갑작스레 적 잠수함이 쏜 어뢰를 발견했다고 작고 잽싼 구축함처럼 즉시 지그재그 기동을 하기란 무리다.[* 중순양함급 정도 되면 보통 속도가 아무리 높아봐야 30노트 초중반대이다. 하지만 일본군이 운용한 [[산소어뢰]]는 속도가 48노트에 달했거니와, 잠수함용 산소어뢰는 400 kg 장약을 탑재하여 파괴력도 강해서 중순양함 정도는 간단히 격파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항적조차 적어 발견하기도 어렵다. 대잠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중순양함이 (대잠 장비를 갖춘 구축함이나 경순양함이 호위하지 않는) 단독작전에 나섰는데 주간도 아닌 야간(새벽)에, 완벽한 기습에 성공한 잠수함이 투사한 어뢰를 발견하고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렇게 완벽한 기습이라면 [[전함]]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공고급 순양전함]]과 장갑이 비슷한 [[시나노]]가 미국 잠수함의 뇌격에 가라앉은 상황과 I-19에 의해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 '''자기를 노리고 직접 사격한 것도 아닌''' 눈먼 어뢰 한 대 맞고 중파된 사례도 있다. 인디애나폴리스의 경우 와스프를 노린 어뢰가 흘러나가 맞았는데 이 경우 제대로 걸리면 전함도 큰 손상을 입는다.] I-58의 함장 하시모토 모치츠라 중좌도 종전 후 미국에 인디애나폴리스에 적재된 화물을 노리고 공격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불려갔다. 물론 I-58은 인디애나폴리스에 실린 화물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고 그저 좋은 먹잇감이 나타났기에 사냥한 것에 불과했다. 이 때도 하시모토 중령은 인디애나폴리스가 어떤 기동을 해도 격침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했지만, 이미 미 해군은 맥베이 대령 죽이기에 들어갔으므로 증언을 무시했다. 맥베이 대령은 이후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사면하여 복직하였으나, 1949년 [[소장(계급)|소장]] 계급을 끝으로 예편되었다. 전쟁 중 생존한 항해/항공병과 동기들이 대부분 [[중장]]이나 [[대장(계급)|대장]]으로 예편했음을 생각하면 사실상 [[불명예 전역]]이었다. 결국 해군의 책임까지 모조리 떠맡고 유족들의 비난을 혼자서 뒤집어쓴[* 유족들이 계속해서 살인마라고 비난하는 편지와 전화를 보냈다고 한다.] 맥베이 제독은 1968년 향년 70세로 자택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유서는 남기지 않았으나, 발견 당시 자신의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줬던 해군 인형 장난감을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